집단의 합의와 ‘악마의 대변인’
어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능한 한 받아들였으며, 잘못된 부분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도 되짚어보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 하기를 습관으로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라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두루 듣고 사물을 모든 관점에서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이외의 방법으로 진리를 얻은 현인은 없으며 지성의 특성을 보더라도 인간은 이 이외의 방법으로는 현명해질 수 없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집단의 합의가 언제나 옳지 않은 이유
집단의 의견이 반드시 옳은 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로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굳이 연구까지 가지 않더라도, 회사 생활을 몇 년만 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례에서도, 근속이 오래된 부서에 새로 합류했을 때 어리석은 선택들이 당연한 것처럼 결정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선택을 의심하지 않고 “옳다”라고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다른 목소리는 쉽게 묵살되었다.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개념
천주교에는 과거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라는 독특한 역할이 있었다. 어떤 인물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절차에서, 그 사람의 결점이나 부도덕한 행적을 의도적으로 지적하는 역할이었다. 실제 신앙심이나 감정과 무관하게, 검증을 위해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 임무였다.
이 개념은 현대 교회에서 사라졌지만, 논쟁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하나의 의견에 동조하기 쉬운 상황에서, 일부러라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존재는 집단의 맹목을 막아주는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와 비판자의 부재
특히 한국의 조직 문화에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원활한 관계 유지가 미덕으로 여겨지면서, 회의석상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종종 불편한 사람 취급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는 반드시 비판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장기간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기존 노력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일은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한다.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용기
12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자. 10개월이 지난 시점에 경쟁업체가 동일한 성능의 제품을 먼저 출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제품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나은 점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자.
이때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회의한다면, 과연 올바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지난 시간과 노력을 전면 부정하는 용기 있는 발언이 가능할까. 혹은 문제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제안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이미 걸어온 길을 뒤집는 선택은 극도로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하다. 조직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 혹은 그 역할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있어야 집단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다양한 의견을 듣고 사물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진리를 향한 유일한 길이다. 조직과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집단의 합의가 반드시 옳다는 보장은 없으며, 이를 보완하는 비판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역사적 장치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불편함을 무릅쓰고도 반대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